독서 이야기/문학

풍선을 샀어(조경란)

온전한 나로 살기 2019. 12. 2. 21:24

나는 철학을 전공하고 10년 동안 니체에 빠져 살았다. 남은 거라곤 친구 하나 없고 옛 애인 남자 친구조차 없는 서른 살 중반의 나이뿐이다. 10년 만에 돌아온 서울은 흡사 관광객처럼 지도를 보고 찾아다녀야 했고, 옛 선배는 철학으로는 시간강사 자리도 얻기 힘들다며 일찌감치 철물점으로 전업을 했다. 선배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문화센터에 니체 관련 강좌를 개설하고 j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토마스는 '피곤하다'라는 나의 말에 '우울하다는 걸 피곤하다고 표현하면 좀 나아"라고 물었다. 토마스는 내 친구이자 신경의학과 내 주치의다. 나는 남은 돈을 털털 털어 가방을 샀고 다시 가방을 팔아 앵무새를 샀고 앵무새에게 가르칠 말들로 고민하다 결국은 가장 소중한 앵무새마저 팔아버리고 그 돈으로 풍선을 샀다. 과호흡에 당황하지 않도록 힘들 때마다 풍선을 불었다. j는 핸드볼 공에 맞아 기절한 후로 골키퍼 생활을 그만두었고, 아버지가 자살했던 28살이 다가옴에 따라 더욱 심한 공황장애로 힘겨워한다. 극장을 가는 것도 지하철을 가는 것도 인생 하나하나가 커다란 도전이다. 어려운 걸 극복할 때마다 100에서 3씩 줄여가다 숫자가 3이 되던 어느 날 j와 다시 만났다.

j와 나는 풍선을 불었다. 나는 발꿈치를 들어 나의 키를 제이의 턱에 맞춰보았다.

책을 읽으며 나는 주인공이 되었다. 언제쯤 나는 나의 아픔을 담담하게 남의 이야기하듯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언제쯤 그것들을 벗어던지고 오롯이 나로 설수 있을까? 짧지만 여운이 남는 책이다. 이제 반을 지났으니 나 괜찮을 거야